고독, 음악의 공간

[스크랩] La Maritza - Sylvie Vartan

체리77 2013. 2. 4. 07:56

 

 

 

La Maritza - Sylvie Vartan
마리짜 강변의 추억

La Maritza c'est ma riviere
마리짜는 나의 강입니다

Comme la Seine est la tienne
센 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Mais il n'y a que mon pere
그러나 지금 기회있을 때마다

Maintenant qui s'en souvienne
그것을 회상하는 것은

Quelquefois...
나의 아버지 뿐...

De mes dix premieres annees
처음 10년간의 추억은

Il ne me reste plus rien
나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Pas la plus pauvre poupee
가엾은 인형과

Plus rien qu'un petit refrain
옛날의 보잘 것 없는 후렴구 외에는

D'autrefois...
아무 것도...

La la la la ... La la la la...

Tous les oiseaux de ma riviere

내 강의 새들은

Nous chantaient la liberte
모두 우리에게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어요

Moi je ne comprenais guere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Mais mon pere lui savait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Ecouter...
다만 듣고 있을 뿐...

Quand l'horizon s'est fait trop noir
지평선이 훨씬 멀어졌을 때

Tous les oiseaux sont partis
새들은 모두 희망의 길 위로

Sur les chemins de l'espoir
날아가고 있었어요

Et nous ont les a suivis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우린 온 거예요

A Paris...
파리로...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살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한
[Sylvie Vartan(실비 바르탕)]은 60년대 영화 '우상을 찾아라'의
주제곡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라 플뤼 벨 푸르 알레 단세)]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고 스타가 됐다. 이후 7,8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면서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 [Love is Blue]와 [La Maritza]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가진 파격과 낭만의 여가수이다. 그녀는 1965년
프랑스의 전설적인 록커 [Johnny Hallyday(자니 홀리데이)와 결혼을 하고 함께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었다. 그 이듬해인 1966년 8월 14일 그들은 사랑의
결실로 아들 [David Michael Benjamin Smet]를 출산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1980년 11월 4일 이혼장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출처 : 응칠이
글쓴이 : 金鐘範(五松/물안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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