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remes - Baby Love
I need you, oh how I need you
But all you do is treat me bad
Break my heart and leave me sad
Tell me, what did I do wrong
To make you stay away so long
'Cause baby love, my baby love
Been missing ya, miss kissing ya
Instead of breaking up
Let's do some kissing and making up
Don't throw our love away
In my arms why don't you stay
Need ya, need ya
Baby love, ooh, baby love
Baby love, my baby love
Why must we seperate, my love
All of my whole life through
I never loved no one but you
Why you do me like you do
I get this need
Ooh, ooh, need to hold you
Once again, my love
Feel your warm embrace, my love
Don't throw our love away
Please don't do me this way
Not happy like I used to be
Loneliness has got the best of me
My love, my baby love
I need you, oh how I need you
Why you do me like you do
After I've been true to you
So deep in love with you
Baby, baby, ooh 'til it's hurtin' me
'Til it's hurtin' me
Ooh, baby love
Don't throw our love away
Don't throw our love away
The Supremes - 1960년대 활동했던 대표적인 여성 그룹.
Diana Ross가 보컬을 맡은 Motown 레코드사의 간판 그룹이었다.
1967년 그룹명을 Diana Ross and The Supremes로 바꿨으며,
총 12곡의 빌보드 No.1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1961년 디트로이트에서 결성된 트리오 걸 그룹, Supremes.
현시대 팝 음악계 모든 걸 그룹의 모델이 되고 있고,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걸 그룹도 이들의 성과를 뛰어넘었던 이들이 없었다.
60년대 비틀즈의 인기에 브레이크를 걸수 있었던 유일한 미국 그룹이었던,
그리고 60년대 흑인 전문 레코드사 모타운사가 배출한
최고의 상품, 수프림스, 그리고 수프림스의 핵심이자,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흑인 여가수인 다이애나 로스..
이들은 모타운 레코드사의 창립 정신과 가장 일치한 그룹이다.
디트로이트에서 50년대 후반 창립된 모타운 레코드사.
베리 고디 주니어는 당시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했을때,
분업화된 자동차 공장의 모습을 레코드사의 제작방식에
결부시키자는 취지하에 레코드사에 설립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러다 50년대 후반에 Hitsville U.S.A라는
작은 레코드샵을 개점하면서 모타운 레코드사가 시작.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공장들처럼,
모타운 레코드사의 제작방식을 결부시킨다.
자동차 문짝 붙이는 사람이 따로 있고, 핸들만 붙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모타운 레코드사 역시 작곡가와 제작자, 기획자가 명확히 분업화되어 현시대
음반 비즈니스 업계의 모토를 마련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런 시도들이 수프림스를 통해 적용되었고, 성과를 거둔 것이다..
여성그룹으로선 최초로 5연속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그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수프림스가 여성 걸 그룹으로선 최초의 성공을 거뒀던 이들은 아니었다.
최초의 흑인 여성 보컬 그룹으로는 셰릴스가 거론이 되고 있는데,
세릴스를 모델로 크리스탈스, 로네츠 같은 여성 걸 그룹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시작.
그 이후 수프림스는 61년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했고,
데뷔하자마자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64년부터 65년까지 비틀즈가 미국시장에 상륙해서 철옹성같은 모습을 보여줄때,
이에 수프림스는 5개의 싱글이 연속으로 넘버원에 오르면서 비틀즈에 맞뿔을 놨던 것이다.
*1964년 비틀즈 VS 수프림스
팝 음악계에서 1964년 역사적인 해이다.
비틀즈가 미국시장에 진출해서 2월 1일자
싱글차트에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올려놨고,
에드 셜리반 쇼에 출연 브리티시 인베이젼을 일으켰다면,
미국 출신으로는 수프림스가 5연속 넘버원 히트곡을
터트리면서 그에 상응하는 기록을 양산했다.
참고로 비틀즈는 4월 4일자 싱글차트에서
1위부터 5위까지가 전부 비틀즈의 음악이었다.
이처럼 미국 음반업계를 초토화시킨 비틀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그룹이 수프림스였다.
8월 22일자에 Where Did Our Love Go가 넘버원에 올랐고,
9월 31일자에 Baby Love가 다시 넘버원,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둔 12월 19일자에
다시 Come See About Me가 넘버원
(이 때 이곡과 1위 다툼을 했던 곡이 비틀즈의
I Feel Fine이었다..물론 이곡도 넘버원에 올랐다.)
그리고 65년 3월, 비틀즈가 2주간
넘버원을 차지하고 있던 Eight Days A Week를
끌어내리고 Stop In The Name Of Love로 또 다시
넘버원, 그리고 6월 12일자에서 Back In My Arms Again까지
5곡의 싱글이 연타석 넘버원에 오르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수프림스가 세웠던 것이다.
하지만 비판도 있었다..
그것은 베리 고디가 철저하게 기획해서 내놓은 팝튠적인 음악이란 것인데,
이것이 무엇이냐면, 흑인 보컬 그룹임에도,
흑인들만의 소울풀하고, 가스펠적인 요소를 대폭 걷어낸채,
백인의 스타일의 깔끔한 편곡이 돋보이는 팝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무래도 리드 보컬을 맡았던 다이애나 로스가 소울풀한 느낌을 안겨주기 보다는
스트레이트하게 내지르는 백인 스타일의 창법을 선보였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당시 베리 고디는 가난한 흑인들을 대상으로는
상업적으로 원하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뒤,
넉넉한 백인 중산층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기획했던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당시 수프림스는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베리 고디의 상품이다, 모타운표 상품이다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수프림스의 결성 초기에는 다이애나 로스와 플로렌스 발라드가
프론트 우먼 자리를 나눠가지게 되지만,
60년대 중반 수프림스가 엄청난 성공을 기록한뒤에
모타운 레코드사에는 다이애나 로스를 중심으로 팀의 개편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룹 멤버들과 다이애나 로스의 불화가 시작됐고,
특히 플로렌스 발라드와 세력다툼이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런뒤에 결국 67년 플로렌스 발라드가 탈퇴, 그 후부터는 그룹명을 수프림스에서
다이애나 로스와 수프림스(Diana Ross & the Supremes)로 바꾸면서,
다이애나 로스를 전면에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1965년 이후에 수프림스가 발표한 곡들이 전부 넘버원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 기록적인 히트를 거뒀으며, 다양한 곡들로 확실하게 즐거움을 주었다.
수프림스의 중반기에 발표한 You Keep Me Hangin' On은 큰 성공을 거뒀다.
이곡이 히트를 거둘 즈음 수프림스에는 문제들이 끊이질 않았다.
모타운의 다른 스타들도 불만이 많았다.(그가운데 Martha Reeves가 특히 그랬다.)
배리 고디 주니어가 다이애나 로스를 향한 각별한 지원과 관심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수프림스의 다른 멤버들도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1967년 중반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 생기는데,
플로렌스 발라드가 패티 라벨과 블루벨스의 멤버였던 신디 버드송으로 교체되는 일이 생긴다.
플로렌스 발라드는 팝 음악 역사상 가장 비극적 희생양이 됐고,
가수로서 그녀의 경력은 사실상 끝나게된다. 그녀는 1976년 사망했다.
플로렌스 발라드가 나가고 난뒤 그룹의 이름이 다이애나 로스와 수프림스로 바뀌게 된다.
이때부터 다이애나 로스의 솔로 활동에 기름을 붇게 된다.
1967년은 수프림스에게 대단히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싸이키델릭 사운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한 Reflections가 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들의 히트곡을 만들어줬던 Holland-Dozier-Holland 작곡팀이 모타운 레코드사를 떠난다.
수프림스 뿐만 아니라, 모타운 레코드사 전체의 손실이었다.
그러나 수프림스는 아직까지 수퍼스타였지만, 그룹으로서 그들은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매리 윌슨과 신디 버드송에 따르면 그들은 그들의 후반기 히트곡들이자
베스트 트랙으로 꼽히는 Love Child와 Someday We'll Be Together에서는
노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9년 11월 다이애나 로스는 솔로 활동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이후 몇차례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1970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수프림스를 떠난다. 다이애나 로스 자리는 진 터렐로 교체가 됐고,
수프림스는 1977년까지 계속됐다. 매리 윌슨만큼은 항상 복잡한 관계속에 수프림스를 지켰다.
다이애나 로스가 있던 시절만큼은 아니었어도 좋은 레코드들이 있었다.
Stoned Love, Nathan Jones, 그리고 Four Tops와 함께 발표한 River Deep-Mountain High는
특히 두드러졌다. 팝 음악 역사를 보면 그룹에서
어떤 리더, 수퍼스타를 잃고 나면 흔들리기 일쑤인데, 수프림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72년 이후 수프림스를 차트에서는 좀처럼 볼수가 없었다.
오로지 수프림스는 1960년대 다이아나 로스가 이끌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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