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프리트 장군과 클라크 장군



- 실종된 미군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말한 벗이 곧 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은 한국을 벗이라고 생각했고,
그 벗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놀라운 부탁을 하였다.
1952년 12월, 대통령 당선자인 노르만디의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사령부를 찾은 것이었다.
8군과 한국군의 고위 장군들과 참모들이 모두 참석하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밴프리트 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끝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차기 미국 대통령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느닷없는 질문을 하였다.
"장군, 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 안 있어 대통령에 취임할 당선자가 전투사령관에 대한 첫 질문 치고는
너무나 대통령답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아들을 잃고도 꿈쩍하지 않은 밴프리트였기에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전방의 미 제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밴프리트 장군이 사무적으로 짤막하게 대답하자
아이젠하워는 그야말로 참석자 모두가 놀라 나자빠질 사적인 부탁을 공공연히 했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부대로 배치시켜 주시오."
참석자들이 모두 서로 두리번거리면서 웅성거리고
밴프리트 사령관도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젠하워를 응시하면서 의아해 하자
당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내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프지만
- 나는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령관이 즉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순식간에 두리번 거리면서 의아해 하던 분위기가 반전되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표정이 되고 곧이어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각하!"라는
밴프리트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 미 2사단 72탱크 대대의 대대장 T.R. Fehrenbach 중령이
전역 후 쓴 'This kind of war(한국 전쟁)' 이라는 책에서
-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 꿈쩍않는 국민을 둔 위대한 미국,
끔찍히도 자식들을 사랑하여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려고
온갖 부정을 일삼던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과,
어떻게든 자식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벼슬깨나 하고 돈깨나 있다는 고위층 사람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온갖 꾀를 다 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를 누리고,
두 명의 소녀가 미군 작전 훈련중에 사고로 죽었다고
미국 물러가라며 몇달 동안 촛불시위로
- 온 나라를 소란케 하는 국민을 가진 한국.


6.25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