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음악의 공간

[스크랩] Re: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 Garfunkel

체리77 2012. 12. 13. 22:23

 

 

 

  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 Garfunkel

 



그대 지치고 외로울때
두눈에 눈물 고일때
닦아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옆에서
고난이 오고 친구가 없을지라도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그대 좌절하고 길거리에 있을때
그래서 저녁이 오는게 너무 힘들때
편안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부분이 되고 싶습니다.
어둠이 들고 고통이 엄습할때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나를 눕힐겁니다.

 

계속 항해를 해요.
당신의 시간이 반짝이고 있어요..
모든 당신의 꿈은 그 길 위에 있고
얼마나 빛나는지 보아요..
친구가 필요하다면
바로 뒤로 다가가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When you're weary feelin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ll dry them all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When you're down and out when you're on the street
when evening fall so hard
I will comfort you
I'm take your part oh when darkness comes
And pain is all ar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your time has come to shine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See how they shine oh if you need a friend
I'm sailing right behind
Like a bridge over triubled water I'll aese your mind.


 

             

                

- Simon & Garfunkel -

아름다운 보컬 하모니로 60년대 최고의 듀오로 각광받았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1970년 No.1 히트송. 그래미상 주요부문을 휩쓸었던 이 노래는 팝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애청되고 있는 노래. 1957년 톰과 제리(Tom&Jerry)라는 이름의 듀오가 "Hey schoolgirl"(49위)로 미국차트에 얼굴은 내민다. 이들이 훗날 20세기 최고의 듀오로 평가받는 폴 사이먼 (Paul Simon)과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이었다. 당시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친구 사이였고 이들의 음악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듀오 에벌리 브러더스(Everly Brothers)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로 활동을 포기하게되고 고등학교 졸업후 각자 대학에 입학하면서 톰과 제리는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다. 이후로도 폴 사이먼은 음악계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며, 1960년대 초반까지 포크음악의 절대적 세례자이 된다. 결국 1964년 포크 록을 표방하며 톰과 제리가 아닌 사이먼 앤 가펑클로 재결합을 이룬 뒤 실패한 데뷔작 'Wednesday Morning 3 A.M.'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이먼 & 가펑클의 음악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 앨범으로 포크의 리바이벌이라 불릴 정도로 트래디셔널이나 커버 곡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지만 폴 사이먼이 송라이터로 본격적인 가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앨범의 실패가 또 다시 둘의 이별을 고하게 만들었고 폴은 영국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음악활동을 한다. 여기서 끝날뻔한 이들의 만남은 데뷔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통 윌슨의 혁혁한 전공으로 인해 화려함을 꽃 피우게 된다. 톰 윌슨은 데뷔앨범 수록곡 "The sounds of silence"를 사이먼 & 가펑클 '알리지 않은 채' 일렉트릭 사운드로 둔갑시켜 1966년초 차트 정상 등극을 이뤄냈다. 국내에서도 60-70년대 내내 애청되면서 '3천만의 팝'이 된 이 곡은 당시 차트에서 비틀스와 번갈아 가며 1위 자리 다툼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폴과 아트는 다시 결합을 하게 되고 이들의 음악은 마침내 정통 통기타 포크에서 '포크록'으로 재무장된다. 1966년부터 이듬해까지 "I am a rock"(3위), "Homeward bound"(5위), 나중 뱅글스의 리메이크로 유명한 "A hazy shade of winter"(13위)등의 일련의 히트 곡들을 쏟아내며 단숨에 팝계의 주류로 부상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우선 데뷔앨범부터 'Parsley, Sage, Rosemary & Thyme'까지 3장의 앨범이 차례로 비평가들의 찬사와 골드 이상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기반 삼아 1968년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졸업'(The Graduate)의 사운드 트랙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이먼 & 가펑클의 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이 앨범은 폴 사이먼이 대다수의 곡을 썼고 참여한 아티스트는 사이먼 & 가펑클외에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 뿐이였다.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앨범의 인기도 치솟아 차트 정상에 9주간을 머물렀고 판매고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들의 두 번째 싱글차트 1위곡 "Mrs. Robinson"이 이때 탄생을 했으며 이들에게 첫 번째 그래미상 트로피도 안겨주었다. 달콤한 "Scarborough fair/Canticle"(11위)가 후속으로 인기를 얻었다. 앞 곡은 국내에서 "스카보로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공전 리에 애청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Parsley, Sage, Rosemary & Thyme', 'Bridge Over Troubled Water'과 더불어 이들의 3대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앨범 'Bookends'가 발매되었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했던 이 앨범은 "Mrs. Robinson"과 "A hazy shade of winter"같은 기존의 히트작 외에도 "America", "At the zoo"(16위), "fakin it"(23위), "Old friends" 등이 동시다발로 주목 받았다. 높아져만 가는 인기에 비례하여 둘의 사이에 균열의 조짐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사이먼이 거의 대부분의 곡들을 썼음에 비하여 보컬부분에서 발군이었던 가펑클은 상대적인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0년 이들의 최고 수작으로 손꼽히는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끝으로 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앨범 수록곡중 "The boxer"가 1969년에 발표되어 7위까지 오르면서 대박을 예고했는데 앨범이 발매되자 수주만에 차트 정상에 뛰어올라 무려 10주간을 머무르며 현재까지 미국서만 8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갔고 타이틀 곡도 싱글 차트 정상에 6주간 등극했다. "Cecilia"(4위), 그리고 유난히도 한국에서 사랑 받았던 "El condor pasa(If I could)"(18위)는 후속타였고 1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본상 3개 부문을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휩쓸었다. 하지만 앨범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녹음하는 동안 사이먼과 가펑클은 거의 결별 상태가 되었다. 영화 '졸업'의 감독인 Mike Nicols가 그의 다음 작품에 가펑클이 출연할 것을 제의하는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원하는 가펑클과 음악을 우선시하던 Simon 사이에 마찰이 생기게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1972년 결별하여 사이먼과 가펑클은 해체된다. 그 후 폴 사이먼은 솔로 활동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아트 가펑클 역시 사이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목할 만한 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그중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와 'Graceland' 같은 앨범은 그래미 앨범상을 수상한 작품들이다. 사이먼 & 가펑클의 해체후 소속 레코드사에선 72년 앨범 'Simon & Garfunkel's Greatest Hits'를 내놓고 돈벌이에 나섰는데 이들을 잊지 못하는 많은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재까지 미국내 1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앨범에선 처음으로 싱글 발매되는 "America"(97위)와 라이브 버전의 "For Emily, whenever I may find her"(53위)이 사랑을 받았다.  사이먼 & 가펑클은 1980년에 다시 함께 활동을 시작했는데 1981년의 센트럴 파크 콘서트에는 무려 50만의 팬들이 모여 그들의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결합 앨범인 'Think Too Much'를 내놓은 후 이들은 또 다시 결별에 합의한다. 아마도 Simon의 노랫말이 그룹으로 노래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듬해 이 공연 실황은 앨범으로 발매되어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공식적으론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무대였다. 1990년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1999년 20곡이 수록된 한 장의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어 다시 세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2002년에는 1967년 뉴욕시 링컨센터 필하모닉 홀에서 녹음된 라이브 앨범 'Live From New York City,1967'이 발매되었다. 60년대와 70년대 초반, 최고의 Folk/Pop 듀오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어두운 듯하면서 시적인 노랫말과 완전한 미성(美聲)의 화음으로 주목 받았다. 

 

출처 : 응칠이
글쓴이 : 金鐘範(물안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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