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릿고개가 제일높다
조선 영조 35년, 왕후가 세상을 뜬 지 3년이 되어
새로 왕후를 뽑고자 하였다.
온 나라에서 맵시있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처녀
20명이 뽑혀 간택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이 중에 서울 남산골 김한구의 열 다섯살 난 딸도 있었다.
드디어 간택시험이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으라는 임금의 분부에 따라
처녀들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을 찾아 앉았다.
그런데 김씨 처녀만은 방석을 살짝 밀어놓고
그 옆에 살포시 앉는 것이었다.
임금이 하도 이상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식이 어찌 가친 존함이 씌여 있는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으오리까?"라고 대답을 했다.
임금이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은 무엇인가?"
"동해바다이옵니다."
"서해바다이옵니다."
"남해바다이옵니다."하는데 김씨 처녀만은
"사람의 마음속이 제일 깊은 줄로 아옵니다."
"어찌하여 그러는고?"
"네, 아무리 바다가 깊다해도
그 깊이를 잴 수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깊어
그 깊이를 잴 수가 없사옵니다."
이어 다른 문제를 또 내었는데
"이 세상에서 무슨 꽃이 제일 좋은고?"
"네, 복사꽃이옵니다."
"모란꽃이옵니다."
"양귀비꽃이옵니다."
그런데 또 김씨 처녀만은
"네, 목화꽃이 제일 좋은 줄로 아뢰옵니다."
"그건 어이하여 그런 것인고?"
"다른 꽃들은 잠깐 피었을 때는 보기가 좋사오나
목화꽃은 나중에 솜과 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니
그 어찌 제일 좋은 꽃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어서 세번 째 질문을 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무슨 고개인고?"
"묘향산 고개지요."
"한라산 고개이옵니다."
"우리 조선에서 백두산
고개가 제일 높지요."
이번에도 김씨 처녀만은 또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보리고개가 제일 높은 고개이옵니다."
"보릿고개는 산의 고개도 아닌데 어이하여 제일 높다 하는고?"
"농사 짓는 농부들은 보리이삭이 여물기도 전에
묵은 해 식량이 다 떨어지는 때가
살기에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그래서 보리고개는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라고 할 수 있지요."
이에 임금은 매우 감탄하였다.
이리하여 김씨 처녀는 그 날 간택시험에서
장원으로 뽑혀 15세 나이에 왕후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정순왕후이다.
이렇게 하여 '보리고개가 제일 높다' 라는
속담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윤선 /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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