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글

꽃을 꺾어들고 / 이규보

체리77 2018. 11. 18. 07:25

꽃을 꺾어들고 / 이규보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물었다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말했다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했다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꽃을 꺾어들고 / 이규보 牧丹含露眞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 折花行 / 李奎報 즐겨보는 프로인 '개콘'에 '두근두근'이라는 코너가 있다. 좋아한다는 걸 대놓고 고백하지 못하는 두 청춘남녀의 수줍고도 풋풋한 사랑을 보노라면 절로 미소가 인다. 은은한 60년대식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의 시 '절화행(折花行)'에서 받는 느낌도 그렇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색시다. 농으로 받아주는 신랑과 박자가 잘 맞는다.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 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토라진 척하는 여자의 애교가 더 예쁘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이기에 이런 시가 나왔을 것 같다. 아마 조선 시대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은 잃은 것도 많았다. <시경>을 보면 시의 원형은 원래 이런 류가 아니었나 싶다. 사진 / Blue Gull
모란이 피기까지는 / 안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