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고 싶을 때

환생

체리77 2018. 6. 17. 09:30

환생




그날도 새벽에 맹구는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맹구는 침대에서 이미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랑스런 아내 옆에 누워 곧 잠이 들었다.

맹구가 눈을 떴을 때, 침대 맞은편에는

도사처럼 차려 입은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누구시죠?

누구신데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와 있는 겁니까?"  


"여긴 네 방이 아니다.

난 저승사자다."



맹구는 믿기 힘들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죽었다고요?

그럴 리 없어요.

난 아직 할 일이 많다구요. 가족한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구요.

절 빨리 돌려보내 주세요."



저승사자가 대답했다.

"넌 이미 죽었다.

환생할 수는 있지만,

네 행적을 보니 개나 암탉으로 밖에 안 되겠구나."



대답은 절망적이었지만

맹구는 집 근처에 양계장이 있다는

걸 생각해 내고는 암탉으로 환생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쩍하더니 몸은 이미 깃털로 덮여 있었고,

맹구는 마당에서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음. 닭으로 사는 게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아!"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활기차게 돌아 다니던 수탉이

다짜고짜 뒤로 올라 타더니 말을 걸었다.



"새 암탉이로군.

그래 여기 첫날인데 어떤 것 같아?"



"생각보단 괜찮아.

그런데, 왜 아랫배가 점점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알을 낳으려는 거로군.

아직 알을 낳아 본 적이 없나?"



"아직 한번도".



"그래?

그럼 긴장 풀고 그냥 낳아봐. 어렵지 않을거야."



그래서 몇 초 후 더부룩한 느낌이 왔을 때, 숨풍하고 알을 낳았다.

알은 꼬리 뒤쪽으로 나와 있었다.

거대한 안도감이 찾아왔고, 처음으로 모성감을 경험한 맹구는

말할 수 없이 뭉클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곧 이어 두 번째로 알을 낳았는데

그 행복감은 처음의 느낌보다도 훨씬 컸다.

암탉으로 환생하게 된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기쁨은 계속 밀려왔고,

그가 세 번째로 알을 낳으려던 찰나,

머리 뒤통수를 무언가가 세게 치는게 느껴지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 인간아!!!

침대에다가 똥을 싸 놓으면 어떻게 해!

이 웬쑤야"


 



이석화 / 닭 디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