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살점을 찢는 듯한 고통을 주는 병’
호열자는 1821년 처음 발병한 콜레라를 이른다
‘엿 먹어라’는 남사당패들 사이의 비역질 은어다
비역이란 궁둥이 쪽 사타구니 살이다
엿이란 남자 성기다
뺄수없는 욕은 성기를 넘어 근친상간에 관한것이다
가장 모욕적이면서 가장 널리 흔히 퍼붓고있는 욕설이다
욕먹는 사람만이 아니라 혈족 성분 자체를 능멸하여
가족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효율 좋은’ 욕이라고 하겠다
가족중심 사회라서 욕스러움은 그만큼 더했다
유월에 담아 육젖[白蝦]이라 부르는 새우를
오월 사리에 잡다 보니 섞인 잡것이라는 오사리잡놈
팥을 넣고 지지는 부꾸미에서 나온 젬병[煎餠]
개가 먹는 밥 개차반[茶盤] 바(밥)보의 경우처럼
생활에서 나온 욕은 차라리 건강하다
얼어죽을 굶어죽을 맞아죽을 쪽박 찰
빌어먹을 놈 따위는
운명에 재앙과 불행이 일어나기를 비는 욕이다
인도에서 건너와 욕말이 된 경우도 있다
기악을 연주하고 향만 먹고 날아다니는
향신 건달파(香神 乾婆)에서 온 건달 어리석게도
석가를 놀렸다는 조달(調達)이가 어원인 '쪼다'는
제법 유식한 축에 낀다고 하겠다
20세기 욕설은
이들 중세사회상을 담은 욕보다 더욱 생생하게
한국인의 삶을 되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후레자식이 떠난 자리에
미군 튀기와 와이캡(Y-cab)이 들어섰다
와이캡이란
한국 여자와 택시는 부르면 온다는 데서 나왔다
미국에서 택시는 노란색(yellow cab)이다
양공주는 양놈공주라는 자기 모멸적 비아냥이다
월남에서 미군은 젊은 베트남 여자를
‘사이공 티(Tea)’라 불렀다
슬픈 이름이다
꾹으로 눌러 있으라는 말은 미군이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 월남에서까지 사용했다
꾹은 한국의 줄임이다
참견이나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다
아부하는 일을 속되게 짜웅이라 하는데
이 또한 월남 사람들이 손윗사람에게 하는 인사말
짜오옹을 파병 군인들이 듣고 와 자리 자리 잡았다
외세에 시달려야 했던 20세기 한국에는
주변 4대 강국 관련 욕이 제법 있다
짱꼴라 쪽발이 로스케 양코쟁이 따위는
상대를 어떻게든 깎아내려 자기 존재를 증명코자 한
한국인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욕설은 언제든 논리보다 생동감이 있었다
정작 그 말은 일본이 청일전쟁 뒤
중국 사람을 낮잡아 짱꼴라로 로스케 또한
러일전쟁 무렵 그 들이 만들어냈다
북방에서는 러시아 사람을 마우재[毛子]라 했는데
이용악의 시에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 주셨지’라고
동경 어린 언어로 숨 쉬고 있다
우라지오는 블라디보스토크다
얼마우재는 이윽고 서양 사람을 흉내 내며
경 망스럽게 구는 이를 일컫게 되었다
미군을 양키라고 한 건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일본인을 얕잡는 쪽발이는 그네들이 두 갈래로 된
나막신을 즐겨 신는 데서 연유하고 있다
친일밀정은 왜놈개라 했다
역으로 일본에 규정 당한 게 조센징 등이다
고문관이란 미군 고문관들이 한국 실정에
어두워 실수를 많이 한 데서 생겨
어수룩한 이를 뜻 하게 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진주한 미국 사람 이름을
개에게 붙여 쓴 일을 한국인의 놀라운
언어 규정력이라고 해야 할까
메리?케리?쫑(John)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개를
사람 부르듯 하는 데서 배운 바도 있었겠다
공무원을 정부미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로
일컬은건 권위주의 권력이 낳은 산물이다
정부미는 양질이 아닌 묵은 쌀을
바리는 바리데기에서 보듯 ‘버리다’에서
짭새는 보통 새 사이에 섞여 있는 잡스러운 새
(사복경찰)라고 하는데
유신시대 이전부터 짜부라고 불렀다
이들과 가까웠던 깡패는 갱(gang)과 패의 합성어다
아무래도 가장 무서운 욕은 ‘빨갱이 새끼’이겠다
이는 욕을 뛰어넘어 살벌함을 품고 있다
욕설은 지역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갯가에 산다는 뜻으로
호남인을 개땅쇠 발음에서 깽깽이라 했다
강원도를 감자바위 충청도를 핫바지라 한 건
세련되지 못하다는 데서 왔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라는
어린이들 놀림에도 나오듯 서울을 뺀질이라 했다
경상도 보리문둥이는 대체로 보리 먹으면서
남들에게 업신 여겨지고 문둥이라면 경상도 사람이나
한센병 환자를 두루 깔보는 말이다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개똥녀 된장녀 따위는
모던걸에서 보듯 여성비하와 소비책임을 전가하는
남성중심적 욕설의 전형이다
근래 나온 "강북스럽다"는 소수가 다수를 업신여기는
일을 온당화하려는 그릇된 발상에 말미암고 있다
욕설의 목적은 상대를 비하 저주하고
이를 통해 일반적으로 지배자를 자기와 동
일시하려는 일상적 언어투쟁이다
신성함을 해체해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도전이다
20세기 한국 욕설은
외세 권위주의 차별 등 억압적 일상을 반영한다
욕이 그저 상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욕설은 이렇듯
한국 사회와 사람의 역동성을 방증하고 있다